거리에서
매년 1월이면 2007년도에 써 둔 이 포스팅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. 작년에도 똑같은 포스팅을 했어요. 부끄럽고 촌스러워 졌지만 복기 하는 이유는, 그의 노래에 무얼 안다 해도 이보다 더 솔직하게 쓸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.
보고 싶네요.
너무 좋은 건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.
광석이 형의 노래는 제게 그렇습니다. 도통 논할 바가 없죠. 그저 좋은 걸 어쩝니까. 맞잡기도 전에 기우는 소주잔 처럼 술술 잘도 속을 데워주는데, 이건 도통 이래 좋다 저래 좋다 말할 바가 아닙니다.
따지고 논하기 좋아하는 제게도 이유 불문의 것은 있습니다. 마냥 좋은 걸 우짭니까. 따져 묻기 좋아하는 이가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. 헤죽 웃으며 소주나 한잔 따라 마시고 따져 묻게 내버려 둘 수 밖에.
"싫음 마러라."
무얼 안다고 서른 언저리도 안 되는 것이 골방에 박혀 광석이 형의 노래를 그리 들었나 모릅니다. 그 흔한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이 소주 한 병 꼬나들고 한숨 푹푹 쉬어가며 서주 한 모금에 노래 한 소절 안주 삼아 참 많이도 마시고 많이도 들었더랬습니다. 고작해야 건너기 힘들다는 열아홉의 강을 갓 건넌 것이 무얼 안다고 말입니다.
참 좋아함에도 일년에 고작해야 서너번 듣나 봅니다. 모르는 이들은 제가 광석이 형의 노래를 아예 모르는 줄 아는 이유 입니다. 광석이 형의 노래는 참 애절 합니다. 오늘 같은 꾸물꾸물한 날씨에는 독이 따로 없습니다. 술 독이 따로 없죠. 노래 한 곡이면 소주 일 병이 뚝딱 입니다. 속을 긁어대는데 술이 안 넘어가고 배깁니까. 술술 넘어갑니다. 참 좋아함에도 불구 하고 누군가에게 권할 수 없는 이유 이기도 합니다. 쉽게 권커니 받거니 해다며 키워 낼 수 있는 느낌표가 아니다 보니 쿵짝을 맞추기도 쉽지가 않습니다. 그래서 외려 의외의 곳에서 쿵짝을 맞는 이들을 만나면 읽었던 가족처럼 무작정 반가운 지 모릅니다. 함께 노래를 들으며 술잔이라도 기울일라 치면 목젖 적시는 소절이 참 매 한 꼴인 것이 애닯기도 하고.
매년 1월이면 2007년도에 써 둔 이 포스팅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. 작년에도 똑같은 포스팅을 했어요. 부끄럽고 촌스러워 졌지만 복기 하는 이유는, 그의 노래에 무얼 안다 해도 이보다 더 솔직하게 쓸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.
보고 싶네요.

광석이 형의 노래는 제게 그렇습니다. 도통 논할 바가 없죠. 그저 좋은 걸 어쩝니까. 맞잡기도 전에 기우는 소주잔 처럼 술술 잘도 속을 데워주는데, 이건 도통 이래 좋다 저래 좋다 말할 바가 아닙니다.
따지고 논하기 좋아하는 제게도 이유 불문의 것은 있습니다. 마냥 좋은 걸 우짭니까. 따져 묻기 좋아하는 이가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. 헤죽 웃으며 소주나 한잔 따라 마시고 따져 묻게 내버려 둘 수 밖에.
"싫음 마러라."
무얼 안다고 서른 언저리도 안 되는 것이 골방에 박혀 광석이 형의 노래를 그리 들었나 모릅니다. 그 흔한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이 소주 한 병 꼬나들고 한숨 푹푹 쉬어가며 서주 한 모금에 노래 한 소절 안주 삼아 참 많이도 마시고 많이도 들었더랬습니다. 고작해야 건너기 힘들다는 열아홉의 강을 갓 건넌 것이 무얼 안다고 말입니다.
참 좋아함에도 일년에 고작해야 서너번 듣나 봅니다. 모르는 이들은 제가 광석이 형의 노래를 아예 모르는 줄 아는 이유 입니다. 광석이 형의 노래는 참 애절 합니다. 오늘 같은 꾸물꾸물한 날씨에는 독이 따로 없습니다. 술 독이 따로 없죠. 노래 한 곡이면 소주 일 병이 뚝딱 입니다. 속을 긁어대는데 술이 안 넘어가고 배깁니까. 술술 넘어갑니다. 참 좋아함에도 불구 하고 누군가에게 권할 수 없는 이유 이기도 합니다. 쉽게 권커니 받거니 해다며 키워 낼 수 있는 느낌표가 아니다 보니 쿵짝을 맞추기도 쉽지가 않습니다. 그래서 외려 의외의 곳에서 쿵짝을 맞는 이들을 만나면 읽었던 가족처럼 무작정 반가운 지 모릅니다. 함께 노래를 들으며 술잔이라도 기울일라 치면 목젖 적시는 소절이 참 매 한 꼴인 것이 애닯기도 하고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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